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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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덕처덕 소우프 탐방]세종시 아파트의 숲만?’ 더러운 풍경’이 원래 주인 행정 중심 복합 도시로서 급속히 성장한 세종시는 부동산 기사에 자주 등장한다. 고층아파트로 가득 찬 신도시의 풍경을 떠올리는 게 자연스럽다. 세종시로 간판을 단 옛 연기군의 다른 지역은 이 특별자치시의 변두리로 잊혀지고 있다. 하지만 세종시 이전에도 도시는 있고 그 중심이 조치원이다.■헝그리 복서의 꿈 조치원 복싱체육관 “조치원에 특별히 볼 게 없다”옛 연기군이 고향인 지인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자연풍경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온 국민이 아는 유명 관광지도 없다. 조치원역 광장에서 처음 만나는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별한 도시라고 해도 신도시처럼 깔끔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시골로 보기는 어려운 다소 어정쩡한 풍경이다. 그 속에 옛 연기군청 소재지인 조치원의 씩씩한 모습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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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역은 현재 깨끗한 유리 외관이다. 긴 벽돌조 역사는 옛 조치원의 자랑거리였다. 서울역과 평양역을 설계한 건축가의 작품이었지만 지금은 빛바랜 사진만으로 볼 수 있다. 조치원역은 지역 물류의 중심이었다. 1905년 경부선이 개통되어 1921년에는 제천 봉양 역까지 이어지는 충북선의 시발점이 됐다. 덕분에 광산이 있는 것도 없는데 1960년대에는 강원 연탄 풍화 연탄 삼보 연탄 3개 공장에서 일년 4,000만장의 연탄을 생산하는 저탄소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역 광장에서 좌우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한때 국도 1호선이었다. 지금은 일방통행으로 운영되는 좁은 골목길이다. 이 도로 주변에는 저탄장과 복숭아를 주로 판매하는 청과시장이 있었다. 역 주변에는 호텔이나 모텔이 아닌 여관이라는 간판이 더러 남아 있다. 청소년 통금구역으로 완곡하게 표현되던 사창가는 완전히 사라지고 공원으로 변했다. 마을이 확장되어 조치원 구간번 국도는 네 차례나 위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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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치원 복싱체육관이 있다. 체육관이 무슨 구경거리인가 싶지만 동네 곳곳에 이정표가 있으니 조치원에서는 그만한 명물이다. 길쭉한 원통을 반으로 잘라 엎드린 형태의 외관이 특징이다. 1952년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군수 물자 창고로 지은 건물이다. 푸른 페인트로 외벽을 장식했지만 허름한 몸을 모두 가릴 수는 없었다. 마을 한복판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자체가 보물이다.내부는 낡고 매력적이다. 정면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고 양철 지붕 채광창을 통해 천장에서 빛이 쏟아진다. 매끈한 바닥에 반사된 햇살은 다시 체육관 전체에 은은하게 퍼진다. 낮에는 조명을 켜지 않고 처음 들어가면 극장에 들어온 것처럼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1970~80년대의 세계 챔피언을 꿈꾸던 ‘헝그리 복서’의 애환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이런 독특한 공기 덕분에 영상미를 중요시하는 200여편의 영화, 드라마, 뮤직 비디오, 화보, 광고가 이 체육관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체육관 입구 벽면에 촬영 리스트와 함께 주요 장면을 찍은 사진이 붙어 있다. 기생충의 주연 배우 송강호의 모습도 보인다. 2000년에 공개한 레슬링 영화’반칙왕’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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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건물에 복싱 체육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1975년이며 칸욘을 관장이 부친에게 물려받은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60여명이 관원에 등록되어 있어 안에는 여전히 챔피언의 꿈을 키울 선수도 있다. 그래서 세종시가 관광지로 홍보하고 있지만 여행객들은 선뜻 나서기가 망설여진다. 추억의 인증샷을 한 장 남기는 것이 주목적인 여행객들로서는 체육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강 관장은 사람들이 문 앞에서 입회하면 신경이 쓰이고 기분이 언짢은 게 사실이라며 시가 마땅한 대책 없이 관광지로 홍보하는 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체육관이 조치원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 됐으면 하는 생각은 나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조치원은 시장이다…자장면 2500원, 탕수육 7000원 ​, 조치원에서 시장을 필수적이다. 조치원 시장은 시골 오일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크고 활력이 넘친다. 행정구역이 바뀌면서 현재는 ‘세종 전통시장’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문헌상 조치원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한 것도 시장과 같았다. 1770년(영조 46)에 발행한 동국 문헌 비고 햐은시표은에 ‘청주 목 내의 조치 원장은 4일과 9일 열리는 ‘라고 소개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역사 뿐 250년이다. 관영 숙박시설인 원이 설치된 곳이어서 실제로는 그보다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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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원역 광장에서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시장이다. 단지 골목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4블록 전체가 아케이드로 연결된 대형 시장이다. 도심 전체가 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객들에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값싼 음식이 가득한 식당이다. 입구 찐빵집의 대형 찜통에서는 뽀얀 김이 감돈다. 스루 빵은 3,000원, 찐빵과 만두는 5개에 각각 4,000원이다. 다양한 주방이 즐비한 이동판매대와 반찬가게를 지나면 골목마다 작은 식당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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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음식점은 박리다매로 승부하는 광진식당이다. 메뉴는 단 3종류. 자장면 2,500원, 짬뽕 3,500원, 탕수육 7,000원이다. 싸다고 양이 적거나 맛이 형편없는 것은 아니다. 평일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줄을 서야 할 정도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테이블이 부족해 모르는 사람과 자리를 같이해야 할 수도 있어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게 흠이다. 바로 옆 1,000원의 호떡 가게도 성황이다.조치원 전체가 시장이었다는 흔적은 주변에도 남아 있다. 마을을 둥글게 둘러싸고 도는 조천의 제방 근처에 청주여관이라는 건물이 남아 있다. 시장 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일종의 술집이었다. 일대는 현재 한적한 주택가로 변했지만 우시장과 수목시장이 서 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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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방 근처 정수장 터는 문화정원이라는 소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과 원통형 저수조가 남아 있다. 공원 안내판에 세종 9년 연기 현감으로 부임한 허 만석의 공적을 부과하고 싶을 정도로 자세히 적어 놨다.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조천에 보를 설치하고 제방을 쌓았다는 내용이다.무시하고 범람한 조천에는, 옛부터 갈대가 우거지고 새가 많았다. 조치원이라는 지명도 새들의 보금자리인 도리카와에서 유래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도로명 주소에 반영된 새내길 새내로 역시 조천에서 온 이름이다. 조천 너머로는 청주 오송읍이다. 충북은 제주도와 함께 미 군정 시절부터 시행된 야간통행금지의 예외지역이었다. 1982년 1월 5일 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조치원 술꾼들은 자정이 가까워지면 쵸쵸은 다리를 건너, 청원 소표은리으로 주연을 계속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한다.아사카와 제방에는 현재 벚나무가 터널을 형성해 봄을 기다리고 있다. 제방 주변 평리마을 골목도 최근 타일벽화로 장식돼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세종시 도시 재생 센터에서 조치원 옛 자취를 쫓는 3개의 탐방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5~20명이 단체로 신청할 수 있다. 서울(혹은 용산역에서 조치원역까지는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열차가 수시로 운행한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세종=문 ㆍ 사진 치에훙스 기자 입력 2020.02.1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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